국민학교 2학년때쯤 여느때처럼 학교를 마치고 집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때마침 작은누나도 집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대뜸 하는 이야기가 "너 오늘 생일 아니야?"라고 물었고 달력을 확인한 나는 그날이 내 생일이었음을 자각했다. 집에는 작은누나와 나 둘뿐이었고 어머니는 항상 아주머니들이 모여 화투치는곳에서 오늘도 소소한 행복을 즐기고 계셨다. "야 엄마가 너 생일도 잊었나 보다. ㅎㅎㅎ 어쩌냐?" 평소 아들아들 하며 지내시던 엄마를 비웃는 것처럼 뭔가 쌤통이다 싶었던 누나의 미소가 여전히 떠오른다. 나는 울먹이며 화투치는 현장에 전화를 걸었고 다급하게 엄마를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엄마. 오늘 내 생일이래. 엄마 어딨어?" 눈물을 흘리며 묻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아이고, 내 정신좀 봐. 엄마가 금방갈께. 좀만 기다려!" 하곤 급하게 자리를 정리하는 대화를 하시더니 전화를 끊었다. 오는길에 평소 내가 좋아하는 냉동 돈가스 한팩을 사다가 급하게 집에 오시고는 우는 나를 위해서 저녁식사때도 아닌데 허겁지겁 돈가스를 튀겨내어 돈가스 소스를 부어주셨다. 여전히 잊지 못하는건 "아빠에게는 비밀로 해야한다?"라며 당부하던 엄마의 말이었다. 이미 맛있게 돈가스를 먹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알았다고 하고 그렇게 그날 생일을 보냈다.
이제는 나이가 한참먹어서 해외에서 지내는 와중에 여전히 종종 생일축하도 빼먹고 지내곤 했었는데 올해 생일에는 엄마가 날짜를 정확히 맞춰서 전화를 해줬다. 왠일로 전화를 제때 줬냐고 물으니 요즘은 코로나때문에 일이 급하지 않아서 너 생일되면 바로 연락주려고 기다렸다고 하셨다. 오랜만에 통화를 하는데 멀리 떨어져있고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너무 커지는것 같아서 어릴적 생일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ㅋㅋㅋ 어릴적에는 제대로 기억못하고 화투치러 갔었는데 용케 내생일을 다 기억해 냈네. 그날 기억나? 엄마가 냉동 돈가스 하나사서 다급하게 뛰어왔잖아. ㅎㅎㅎ" 옛날 이야기를 하니 엄마도 생각이 난듯 같이 한참 웃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쉬움이 가득했던 목소리는 다행히 옛추억을 떠올리며 잘 마무리가 되었다.
내 생일의 흑역사였던 돈가스가 오늘에서는 기억에 남는 생일의 추억이 되어줘서, 또 어머니를 잠시나마 웃게 해줘서 참 고마운 음식이 되었다. 자주 못사먹었는데 기념으로 오늘 하나 사서 튀겨먹어봐야지. 소스는 그때 먹었던 오뚜기꺼로다가.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