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
좁지만, 천장이 높은 미술관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주차를 막 마치고 약속 장소로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참이었다.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옅은 갈색 머리의 백인 청년이 내리진 않고 고개만 내민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고잉 업?”
나도 모르게 영어가 튀어나왔다. 유학 초기에 룸메이트가 나에게 “올라가는 중이야”를 영어로 번역해봐. 해서 “고잉 업?”이라고 말했더니, 맞췄다며 엘리베이터 탈 때 그렇게 물어보면 된다고 가르쳐주었던 말이었다.
“Oh, I am just checking what’s down here.”
“잍스 저스트 어 파R킹 랕.”
목소리가 얇은 나지만, 영어를 잘하는 사람인척 최대한 배에 힘을 주고 중저음으로 대답하며 엘리베이터 탑승했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조명색이 샛노란색으로 바뀌었다. 둘 사이의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뭐라고 농담을 해야하나 생각했는데 노란 조명에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고, 괜한 농담을 더 어색해질 것 만 같아 그냥 조용히 서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말했다.
“헤브 어 나이스 원.”
내가 제일 자주 하는 헤어짐 인사다. 아침, 점심, 저녁 상관없이 써도 돼서 자주 쓴다.
“You too!”
짧은 인사와 함께 멀어지는 청년의 뒤로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보였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미술관에서 세계 여러 각국에서 온 외국인 관람객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찡했다. 20년 전과는 너무나 달라진 한국의 모습에 감동하며 탁 트인 로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예고와 예대를 같이 다닌 동창 친구를 만나는 자리였다. 내가 앉은 로비 오른쪽 벽면에는 두 예술가의 피아노 퍼포먼스가 상영되고 있었고 왼쪽 벽면에는 미국에서 우연히 보고 반한 Ufan Lee(이우환) 님의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한국에 방문했을 때마다 가족이나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미술관에 들를 시간은 없었기에, 미술관에서 만나자고 한 친구가 참 고마웠다. 친구는 최근에 이곳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는데 타국에 있어 와보지 못했었다. 전시는 이미 끝났지만 전시했던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얼마 있다 도착한 친구는 과거에서 타이머신을 타고 온것 마냥 학생 시절 모습 그대로였다. 성격도 외모도 털털해보이지만 어딘가 심오한 정신세계가 느껴지는 친구는 자신에게 초대장이 남아있다며, 표 사는곳에 가서 입장권으로 바꿔주고는 잠시 나갔다 오자며 근처 맛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거의 20년 만에 만났지만,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접어두고 그의 전시회가 어땠는지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미술관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전시회 영상을 하나 보여주었다. 영상은 관람객이 문을 열고 들어가며 시작이 되는데, 전시회 공간 속에는 한국인이라면 익숙한 물건들과 공간이 연극무대 처럼 꾸며져 있었다. 같은 공간 속에 있어도 개개인의 기억과 경험에 따라서 다양한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여러가지 음향, 조명효과가 매번 다른 공간을 연출하게 했다고 한다.
만약 이 전시가 내 전시회였더라면 나는 더 오바하고 난리를 치며 자랑했을텐데 친구는 차분했다. 내게 그의 전시는 관람객이 입장을 하며 시작되는 연극 공연같이 느껴진다. 관람객의 기억과 추억에 따라서 전시장의 결과물도 달라지는 것이고, 그 기억 속의 느낌을 느끼고 표현하고 연기하게 되는 사람도 사실 관람자 자신이라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내가 만약 직접 전시를 볼 수 있었다면, 나는 구석 한편에 서서 다른 관람객들의 표정과 느낌을 구경했을 것이다. 학창 시절, 같이 공연을 하고 공부했던, 그리고 시장 다락방에서 소주를 마시며 신과 예술에 대해 토론했던 친구로서 멋진 작가가 된 그의 전시를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다음 전시회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번 겨울에 있는 작은 전시 이후로는 뚜렷한 계획이 없다며 멋쩍어했다.
친구는 커피 한잔 하자며 다시 미술관으로 나를 이끌었다. 1층에서 커피를 사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이동하는데, 아까 외국인과 있을 때처럼 엘리베이터 조명색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새빨간색이었다. 시각적인 변화로, 공간의 변화를 경험시켜주는 장치가 친구의 전시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은 전시장이 아닌 휴식공간 같은 곳이었는데, 현대적인 그래픽 패턴들이 새겨진 테이블과 의자들이 커피숍처럼 놓여있고, 우리가 앉은 선반 테이블 앞으로는 미술관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미술관 구석구석을 꿰고 있는 친구가 뭔가 멋있어 보였다. 나는 최근 뉴욕에서도 경험을 이용한 전시가 유행이며, 광고계에서도 그런 전시를 통해 상품을 선전하려고 도모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때 친구가 뜻밖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듯 내뱉었다.
“RM도 와서 보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라고.”
제대로 듣긴 했는데, BTS의 리더 RM을 말하는것이 맞는지 제차 물었다.
“BTS 리더 RM 말하는거야?”
”응.”
친구는 별일 아니라는 듯 RM의 인스타로 가서 포스트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 포스트에는 BTS 멤버들의 일상 사진과 함께 친구의 전시회 사진이 올려져 있고, 내용에는 전시회 제목인 ‘가화만사성’, 딱 다섯 글자만 적혀 있었다.
나는 재빨리 구글에 들어가서 한글로 ‘가화만사성’을 쳐보았다. 예전에 끝난 것 같은 한국 드라마가 검색 창에 떴다. 공교롭게도 예전에 방송된 한 한국 드라마의 제목 또한 가화만사성이었다. 친구의 전시회 사진이나 자료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황한 나머지 어디서 부터 설명해야하는지, 이 친구는 왜 내 앞에 해맑게 앉아있는지 잠시 멍하니 생각하다 질문을 했다.
“이게 언제 포스트 된 거야?”
“한 3월쯤? 왜?”
당시는 이미 9월 말이었다.
“근데 아무것도 안 했다고? 너 하루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RM 인스타그램에 들어오는지 알아?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구글에 가화만사성을 검색해봤을 텐데 너의 전시회를 찾을 수가 없잖아?”
“그래? ㅎㅎ 내가 잘못한 거야?”
그의 웃는 모습에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너 지금 이게 그냥…그…우리나라 아이돌 한 명이 너 전시회에 와서 사진 한 장 찍어 올린 느낌이 아니야. 너가 감이 잘 안오나 본데 BTS는 그냥 아이돌이 아니야. 후….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지? 만약 비틀즈 폴 메카트니가 너 전시회에서 감명받았다고 인스타 포스트를 했다고 치자. 너무 기쁘겠지? 그 효과보다 몇 천 배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현재의 RM이야. 예를 들어 광고 회사에서 RM에게 포스트 하나 올려달라고 하려면 얼마를 줘야 하는지 알아? 물론 돈 준다고 다 되는것도 아니고…”
그리고는 한참을 더 얼이 빠져있었던 것 같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만약 RM이 그 포스트를 한 당일부터 가화만사성으로 그의 전시나 그의 웹사이트 검색이 가능했다면, 내가 다음 계획을 물어봤을 때 그의 대답은 달랐을 것이다.
“그래, 아직 늦지 않았어. 네가 지금 나를 만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지금 바로 집에 가서 너 웹사이트에다 전시회 사진을 올리는데, 화일 이름을 가화만사성_박성준_1.jpg, 가화만사성_박성준_2 이런 식으로 10까지 만들어서 올려.”
“왜 나는 너 만나는 게 더 좋은데…ㅎㅎ 안그래도 그때 미술과 친구가 뭐라고 하더라. 빨리 뭔가 해야 한다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포스트도 남기긴 했어.”
전시회 사진을 올려준 여러 지인과 RM의 포스트 사진을 함께 올리고 짤막하니 ‘관심 감사합니다’라고 적인 게 전부였다.
“아니 네 인스타그램에 감사하다고 하면 누가 알아. 너 지금 이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화만사성을 copy and paste 해서 검색해보고 있는지 알아?”
한참을 잔소리한 후에야 비로소 미술관 구경을 갔는데 전시회도, 그의 설명도, 아무 작품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진심으로 친구가 나를 미술관에 버려두고 집에 뛰어가서 바로 작업을 시작했으면 했다. 어떻게 하면 친구에게 RM의 인스타그램 포스트 하나의 위력과 BTS의 영향력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며 전시 작품들을 소개해주는 친구에게 귓속말로 계속 잔소리를 퍼부었다.
“너 RM님이 자신의 포스트의 영향력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야. 직접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가화만사성’이라고 적어준 거는 이건 완전 너한테 ‘잘 되십시오’ 하고 토스를 해준 거잖아. 그걸 너는 아주 정성스럽게, 감사하게 받았어야지.”
그러다 문뜩 어린 시절 그와 신에 대해 논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RM이 포스트 할 때, 친절하게 너 이름까지 넣어서 ‘박성준 가화만사성’ 이라고 올려줬으면 좋았겠지만! 그러면 그게 신이 보기에도 너한테 너무 다 떠먹여 주는거잖아. 그래서 RM은 가화만사성까지만 쓰게 하고 나머지는 너의 몫을 조금 남겨놓은 거야.”
친구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이나마 알아들은 것만 같아 기뻤다.
친구는 실제로 며칠 후 웹사이트(http://www.parkjun.net/)를 업데이트했지만, 검색 결과에는 여전히 드라마 가화만사성이 도배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RM이 무슨 의미로 가화만사성이라고 올렸을까 궁금해할텐데 그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사이트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답답하다. 수많은 사람의 헛검색을 바로잡아 주고 싶다. (그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다.) 한편으론 친구가 BTS의 영향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재빠른 반응을 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생각해보면 내 친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BTS의 영향력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유례가 없으니 아직 그 크기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해야할까? 얼마 전 BTS 멤버 진의 입영 소식을 들었다. 나는 유튜브에다가 BTS의 입대가 얼마나 국가적 손실인지, 그리고 우리나라 헌법 제 33조의 7항에 쓰인 예술체육요원의 조건, ‘문화창달과 국위선양을 위한 예술, 체육 분야의 업무에 복무하는 사람’에 얼마나 BTS가 적합한 사람들인지를 설명하려 했지만 내 모습을 보여주는것이 어색해서 아직 하지는 못했다.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살고 있는 한 미국인과 BTS에 군입대에 대해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그녀는 BTS가 군대에 다녀오는 것이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 더 좋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도 공감은 한다. 징병제인 우리나라에서 남자들의 입대는 꽤 심각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에서 살며 그들의 위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피부로 느끼고 체험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업적과 영향력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크며, 그들이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고 꿈꿔왔던 ‘문화의 힘’이기에 우리 국민이 스스로 지키고 아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경제적인 가치의 문제가 아니지만, 경제적인 효과만 따져보아도 군대 제도를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꾸는 것을 도모할 수 있을 만큼 크다고 말해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크고 작은 공모전에서 수상 경력이 있다. 미국에서 영주권을 진행할 때 예술인 특별 영주권에 지원했고 공모전 수상력과 심사경력 등이 인정이 되어 다른 영주권보다 발급이 빠른 EB1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다. 일반인들은 거의 알지 못하고, 영주권 심사를 하는 공무원들도 잘 알지 못하는 대회에서 수상해도, 그 대회의 권위와 지원자 인원 등으로 평가를 하여서 인정되면 특혜를 준다. 궁극적으로 그런 인재는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중가요를 하는 우리나라의 아티스트가 세계 최고의 음악 차트인 빌보드에서 1등을 하고, UN에 가서 연설도 하고, 월드컵 개막식 공연을 하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한국을 방문하게 하며 한국인의 위상과 이미지를 바꾸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인 조항이 명시되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특례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차별이 아닐까? 그리고 그들에게도 특례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재들에게 특례를 적용하기 어려워질지도 생각해야 되는 시점이다. 법을 업데이트 해야한다면 지금이 적시가 아닐수 없다.
늦은 나이에 유학와서 영어가 서툰 한국인으로 살며 서러운 일이 많았는데 2019년 METLIFE BTS 콘서트에서 수많은 미국 팬들의 떼창을 목격했을 때의 전율은 잊을 수가 없다. 실제로 비티에스(와 많은 한국 K-POP 가수들이) 전세계의 아이들을 한국말로 키우고 있다.
이제는 정말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두고,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시대가 되었다. BTS 혼자 일궈 낸 결과는 아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성과도 조명되고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물론 혹자는 그들을 그저, 아이돌 가수라는 직업을 갖고 열심히 일을 한것일 뿐, 국가를 위해 뛰는 국가대표 선수들과는 다르다고 주장을 할수도 있겠지만, 난 그들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유례없던 업적을 쌓으며 활동하는 내내 가슴에 세기고 다녔을 대한민국이라는 네글자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짧게나마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글을 마치려 한다. BTS 여러분, 감사합니다! 덕분에 한국인에 대한 기대와 대우가 달라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살고 있으며 저 또한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힘차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루트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