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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엔] 극단의 소음과 조용한 다수

요즘 인터넷을 보다 보면 묘한 감각이 든다.
마치 사회 전체가 극단으로 기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근거 없는 비교, 과장된 위기 담론, 특정 정치인을 향한 혐오가
추천을 타고 반복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이 생긴다.
정말 세상은 이렇게까지 극단화된 걸까?
아니면 내가 보고 있는 화면이 왜곡된 걸까?

나는 점점 후자에 가깝다고 느낀다.

인터넷은 여론을 반영하는 거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정을 증폭시키는 확성기에 더 가깝다.
분노와 공포, 조롱과 단정은 빠르게 퍼지고,
조심스러운 생각과 복잡한 판단은 쉽게 묻힌다.
그 결과, 항상 극단적 소수가 사회의 대표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용한 다수는 사라진 게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일하고, 생활하고, 판단한다.
다만 댓글을 달지 않고, 싸움에 끼지 않으며,
굳이 모든 분노에 반응하지 않을 뿐이다.


문제는 이 침묵이 동의로 오해된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흔히 극단적 성향이 확산되는 이유를
‘무지’나 ‘악의’에서 찾으려 한다. 나 또한 그 함정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해 부족이 아니라
이해를 거부하는 상태에 가깝다.
자신이 틀렸을 수 있다는 가능성보다
누군가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감각이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을 때,
논리는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래서 극단적 소수를 설득해야 한다는 말은
대부분 현실성이 없다.


논리를 들이밀수록 방어는 강화되고,
반박은 곧 공격으로 인식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추가 정보가 아니라
늘 공격받고 있다는 감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심리적 안정일지 모른다.


모든 극단적 소수가 논리적인 이해를 할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두를 설득하는 능력이 아니라,
극단이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구조여야 한다.

극단적 소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사회적 영향력은 관리되어야 한다.

나는 세상이 극단으로만 가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극단의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려
다른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는
생각하는 다수, 흔들리지 않는 다수가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더 시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다수를
제대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글을 써본다.

과거를 돌아보면 새로운 매체는 늘 비슷한 길을 걸었다.
신문은 처음 등장했을 때 여론을 조직하는 선동의 도구였고,
라디오는 독재 권력이 목소리를 장악하는 수단이 되었으며,
텔레비전은 감정을 자극하는 포퓰리즘의 확성기로 기능했다.

그러나 그 어떤 매체도 그 상태로 고정되지는 않았다.
규제가 도입되고, 공영성이 논의되었으며,
미디어 윤리가 자리 잡고,
무엇보다 시민들이 매체를 비판적으로 읽고 보기 시작하면서
확성기는 점차 공론의 장으로 재편되었다.

인터넷이라고 해서 이 흐름에서 벗어날 이유는 없다. 아직 그 과정 한가운데에 있을 뿐이다.

인터넷은 여전히 만들어지는 중이고,
이 공간이 무엇이 될지는 이미 정해진 답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을 외면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조용한 다수는 여전히 여기 있다.
다만 그들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보이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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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