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미국에 이민 온 직후에는, 한국에서 자란 감각 그대로였다.
미국도 한국처럼 총기 소유는 불법이 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총은 위험하고, 위험은 줄어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더 안정적이고 성숙한 사회인 것 같았는데, 왜 미국은 이렇게까지 총기 소유를 주장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어릴 때 친구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1:1로 대치하는 상황이 오면, 너의 첫 무브는 뭐야?”
나는 망설임 없이 “피하기”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고 스스로 꽤 뿌듯해했다. 죽자고 덤비는 사람을 상대로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요즘 상황을 보면서, 그때의 대답이 떠오른다.
ICE와 같은 강한 공권력을 상대로 무력으로 대응하는 시민이 나오지 않는 모습은, 이 사회가 아직은 성숙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상황 속에서, 반격이 아니라 회피를 선택하는 것.
어쩌면 그게 지금의 최선일지도 모른다.
그건 무능이나 무지가 아니라, 선택이고 절제일 것이다.
그래서 인정하게 됐다.
미국은 구조적으로 총이 필요하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는 면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넓은 영토, 주마다 다른 분위기, 개인의 자위권을 중요하게 여겨온 역사. 이런 배경 속에서는 총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불안에 대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아왔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반면 대한민국은 다르게 흘러왔다. 강한 총기 통제와 비교적 일관된 치안 체계 속에서, 시민이 무장하지 않아도 사회가 유지되는 경험을 해왔다. 두 나라가 같은 답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고, 그래서 이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미국에서는 총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총을 들고 싶지 않다.
힘이 힘을 부르는 방향으로 더 나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힘은 또 다른 힘을, 총은 또 다른 총을 부르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기술이 점점 더 강해지는 세상에서, 개인이 들고 있는 총이 과연 얼마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드론, 감시 기술, 정보 통제 같은 것들이 절대적인 힘이 되는 미래가 온다면, 총이라는 물리적 수단은 오히려 무력해질지도 모른다.
아주 먼 미래든, 혹은 예상보다 가까운 미래든,
만약 흑심을 품은 절대적인 부와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총이라는 것이 단순한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대비의 문제로 논의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 정도의 사람이 총을 들게 되는 순간이라면,
그건 이미 사회가 상당히 위험한 지점까지 와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아직 그 선을 넘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그 선을 넘지 않기를 바란다.
요즘 불안해하는 나 자신을 다잡기 위해 이런 글을 써본다.
흔들리더라도, 중심은 잃지 말자.
이민자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