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의 영어는 참 다양하다.
인종도 다양하고, 같은 인종 안에서도 모두의 영어는 제각각이다.
내가 지금껏 써 왔던 영어도 변해 왔다.
어떤 영어를 쓰느냐는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와도 연결되는 문제처럼 느껴진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를 돌이켜보면
나는 영어의 종류에 먼저 놀랐다.
처음에는 흑인 영어가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매력적으로 들렸다.
점심시간 식탁을 두드려 비트를 만들고
프리스타일 랩을 하던 흑인들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 장면을 동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영어는 교과서에서 배우던 영어와 전혀 달랐다.
리듬이 있었고, 속도가 있었고,
무엇보다 그들만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또 흥미로웠던 것은
흑인식 게토 영어를 쓰는 백인들, 동양인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아마 나도 그 속에 낄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학교 안팎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영어가 들렸다.
이모, 게토, 히피 같은 문화들을 접하면서
내가 알고 있던 세계의 질서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배우던 영어와 실제 거리에서 들리는 영어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다.
누군가는 뉴스 앵커처럼 또박또박 말하고
누군가는 리듬이 강한 슬랭을 섞어 말한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알아듣기 어렵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같은 영어인데도
전혀 다른 언어처럼 들릴 때도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영어를 따라 하게 된다.
멋있어 보이는 말투를 흉내 내기도 하고
“표준적”이라고 여겨지는 억양을 배우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따라 해도
완전히 같은 영어는 되지 않는다.
억양, 문장 구조, 단어 선택, 말의 속도까지
그 사람의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민자들이 쓰는 영어는 조금 다르다.
문법이 틀려서가 아니라
살아온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다르다.
어떤 사람은 학교에서 배운 영어가 강하게 남아 있고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부딪히며 익힌 영어를 쓴다.
어떤 사람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배운 영어가
더 자연스럽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
조금씩 자기만의 영어가 생긴다.
처음에는 부족해 보이던 영어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 사람의 스타일이 된다.
생각해 보면 원어민들도 마찬가지다.
뉴욕의 영어
남부의 영어
흑인 커뮤니티의 영어
캘리포니아의 영어
도시마다 쓰는 표현이 다르고
같은 단어도 전혀 다른 뉘앙스로 쓰인다.
영어는 하나의 언어라기보다
이미 수많은 영어들의 집합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민자의 영어도
그중 하나일지 모른다.
완벽하게 따라 한 영어보다
자기 삶이 묻어 있는 영어.
나는 그런 영어가 더 좋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생각의 구조이자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민자의 삶에는
항상 두 개 이상의 세계가 공존한다.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표현 방식
두 개의 사고 방식
그 사이에서 우리는 계속
조정하고, 섞고, 다시 만들어 간다.
어쩌면 그 과정 자체가
이민자가 만들어 가는 새로운 언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국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했던
자아의 형성 과정이기도 했다.
또 어쩌면
함께 만들어 가야 했던
문화의 형성 과정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혹시 언어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민자들이 있더라도
결국은 잘 살아낼 거라고 믿는다.
젓가락질을 못해도
밥만 잘 먹으면 되는 것처럼.
언어도 결국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면 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